Hey, I'm Won-Gul LEE!

注册日期
백천댁(백천한옥)은 영양군의 동남부에 위치하였으며,
마을이름은 언덕위에 위치한다고 두들마을이라한다.
백천한옥은 두들마을 가장자리에 위치한 전통한옥집이며
집을 애워싸고있는 수백년된 꿀밤나무와 느티나무가
어우러져 마치 깊은 산중에 들어온 느낌이다.
또한 봄,여름,가을의 아름다운 꽃들과 푸른 나무들, 시간이
멈춰진듯한 겨울의 앙상함과 쌓인 낙엽의 포근함이
어머니품에 안긴듯한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집이다.
마을에서는 백천한옥을 집 안주인의 택호를 따서 붙인
이름을 백천댁이라고 부른다.

두들마을은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세운 광제원(廣濟院)이
있었다. 광제원은 사람들의 복리를 위하여 세운 것으로
주로 의료문제를 효과적으로 풀기 위하여 둔 기관이다.
공식적으로는 조선조 고종무렵에 세운 것이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두들에 위치한 원이 있던 마을이라고 하여 원두들
원리라 부르게 됐다.

두들마을은 석계(石溪)이시명(李時明 1590~1674)선생의 4자 항재(恒齋)이숭일(李嵩逸)선생이 부친의 삼년상을 마치고 석보로 돌아와
선업을 잇고 방 후손들이 더해져 재령이씨 집성촌이되었다.

이곳은 일찍이 크게 문풍(文風)이 일었던 곳으로 훌륭한 학자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갈암 이현일 밀암 이재 등이 퇴계학문을 계승 발전시켰고 근세에는 의병대장을 지낸 내산 이현규, 파리
장서사건 가담자 이돈호, 독립유공자 이병각 시인 등이 있다.

또한 이 마을에는 석계 이시명 선생의 부인이 약340년
전에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조리서(음식디미방)를 쓴
정부인 안동장씨 장계향(長桂香 1598~1680)의 유물관과
비석등이 잘 보존되어 있고 이 마을 옆 둔덕에는 석계선생의
서당인 석천서당이 남아있으며,
마을 앞을 흐르는 주남천변에 서있는 암석들에는 석계의
넷째 아들인 항재 이숭일 선생의 친필로 새겼다는
세심대(洗心臺) 낙기대(樂飢臺) 동대(東臺) 서대(西臺)의
글씨가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있다.
이들 사대 중 세심대(洗心臺)와 낙기대(樂飢臺)에 서면 전방의
촌락과 무수한 굴곡의 산야를 일목요연하게 감상할 수 있어 심신이 상쾌하여 배고픔을 잊고 마음을 씻을 수 있다는 뜻에서 대명(臺名)을 지었다고 한다

특히 광록정(廣麓亭) 벽에 선천소장도(先天消長圖)를 걸어두고 전현(前賢)의 업(業)을 계승하며 후학을 선도하는 일에 열중하던 항재선생의 체취가 숨 쉬는 듯 시인 묵객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다.

그외 두들마을은 지방문화재로 등록된 석계고택, 유우당(惟宇堂), 주곡고택(做谷古宅) 등 전통 유교문화를 소개할 고택이 많아 1994년 문화체육부로부터 시범 두들문화마을로
지정받은 유서 깊은 마을이다.

Host's listings (Map view)

登入
Log in with Facebook
Or log in with email
Forget password?
Don’t you have an account?
注册
Sign up with Facebook
Or sign up with email
Are you already a member?
重置密码
Enter your e-mail address used as you account. You will get a link to reset your password in you email. By clicking the link, you could reset your password.
Are you already a member?
欢迎您访问可家家

请确认您的邮件,激活您的账户.

如果有疑问,请联系help@kozaz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