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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집

누구나 어릴 적에는 나만의 비밀 공간 하나쯤 갖고 있지 않았던가. 동네 뒷산에 폐지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움막, 놀이터 미끄럼틀 아래, 학교 옥상 등등…. 어른이 되어서도 비슷한 경우는 있다. ‘여긴 나만 아는 곳인데…’ 로 시작되는 맛집 고수들의 귀띔을 얻고 찾아낸 기가 막힌 곱창집 같은. 화려하진 않지만 귀하고 아까워서 우리끼리만 알고 싶은 비밀 공간들이 있다. 전남 장흥 상선약수마을에 자리한 대나무집이 바로 그런 곳이다.



대나무 숲 속에 숨은 보물
최근에는 부쩍 입소문을 탔지만 상선약수마을은 여전히 작고 조용한 동네다. 장흥 읍내에서 아무나 붙잡고 평화마을을 묻는다면 시골 특유의 친절함으로 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평화마을은 예부터 불리던, 상선약수마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작은 마을의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만여 평의 대나무 숲과 마주하게 되는데 바로 그 숲 어딘가에 보석 같은 작은 집이 숨어 있다.
대나무집을 찾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여유 있게 걸어도 반나절이면 둘러볼 만큼 워낙 작은 마을이거니와 집을 만나는 순간 이곳이 대나무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주변의 대나무 숲과 무척이나 자연스레 어우러진 서민 집. 일자형 가옥 앞 작은 마당에는 동백나무 한 그루가 있고 사방으로 울창한 대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투박한 디딤돌을 밟고 막돌로 쌓아 올린 기단 위 대청마루에 오르면 세월이 짙게 묻은 기둥과 서까래가 눈에 들어온다. 찬찬히 살펴보면 오래된 가구와 다리미, 홍두깨 등이 보이고, 항아리도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내 집 자랑보다 우리 마을 사랑
대나무집 안을 구석구석 살펴볼수록 참 사람 냄새난다 싶었더니 역시나 150여 년 전부터 사람이 살던 집이란다.

다른 곳에 있던 집을 이곳에 옮긴 것은 100여 년 전이다. 전형적인 남도 서민 가옥으로 2006년부터 내부에 현대식 화장실과 부엌을 만들어 손님을 맞았다. 부엌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다기도 마련해 두었다. 이 마을은 예로부터 차로 유명하다며 고려시대 차인 청태전을 권유하는 주인장의 얼굴에 자부심이 은근히 배어난다. 대궐 같은 집이 부러우랴. 대나무 바람 불어오는 마루에서 향긋한 차 한 잔 마시고 있노라면 부족함이 없다. 거기다 주인장이 들려주는 마을 이야기까지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다. 사실은 집에 손님을 받는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 마을을 소개하는 것이 즐거워서라고 한다.



계절마다 다시 찾고 싶은 곳
대나무 숲도 아름답지만 송백정과 배롱나무 군락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나무집에서 조금만 걸어나가면 마을 가운데 아름다운 연못, 송백정(松百井)이 나타난다. 소나무(松)와 배롱나무(百)가 있는 연못(井)이라는 뜻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른 새벽에는 100년 넘은 배롱나무들 사이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신비하다. 일 년에 세 번, 배롱나무의 꽃인 백일홍이 필 무렵에는 수면 위에도 하늘에도 온통 꽃 빛이 물들어 보는 이들을 매료시킨다. 마을 초입의 메타세쿼이아 길에서부터 편백나무 숲 ‘우드랜드’까지 산책 삼아 걷는 것도 추천한다.

우드랜드는 대나무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좋게 나무데크길과 나무톱밥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마을 앞에는 깨끗한 개울가가 있어 여름철에는 가재 잡고 물놀이하기 좋다.